
‘2023 남산소리극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타루의 소리극 창작 워크숍’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타루의 소리극 창작 워크숍
창작의 첫 걸음은 ‘몸풀기’
낯선 감각ㆍ경험을 창작으로 연결
판소리 진입장벽 높이는 옛말
전통의 말맛 살리되 때에 따라 변주
“일단 걸어볼까요?”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걸어보라는 말에 저마다의 영역에서 활동해온 예술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모두 다섯 단계가 있어요.”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속도를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 단계를 정해 전진하다, ‘멈추라’는 신호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서서 “정지된 자신의 몸을 스캔”한다. ‘움직임 수업’에서 정해진 약속이다.
이제 음악이 들려온다. BGM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음악을 거스르는 주인공은 어디에나 있다. 연출가 노심동은 자장가 같은 ‘트로이메라이’에 5단계의 속력으로 질주하며 참가자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음악에 지배 당하지 않는 창작자의 행동은 그것 자체로 ‘신선한 자극’이다. 노심동 연출가의 움직임에 다른 예술가들의 몸짓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심지어 주체적으로 달라졌다. 안주하지 말라는 듯, 음악은 금세 장르를 바꿔 블루스로 이어진다. 움직이는 상황에 취하기 직전, 수업은 방향을 전환한다. 타루 소리꾼들의 동화 낭독이 시작된다. “달님도 자장 자장.” 동화책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세계가 된다. 정종임 타루 대표는 “때론 텍스트를 들으며 즉흥적으로 창작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조금은 빨라진 장단에 작창이 더해지자 예술가들의 연기는 더 진해진다. 수심 한 줄 없는 말간 얼굴을 한 또 다른 예술가는 뻔뻔한 꿈나라 연기를 더했다.
‘2023 남산소리극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타루의 소리극 창작 워크숍’. 연기, 전통연희, 극작, 연출 등을 하고 있는 10명의 예술가들은 전통을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타루의 작품 제작 과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창작의 출발은 ‘몸풀기’…“다양한 감각의 경험으로 창의력 키우기”
타루의 창작방식은 독특하다. 출발은 몸풀기다. 몸 푸는 과정이 체계적이다. 계란 크기로 주먹을 쥐고 손날로 심장을 툭툭 치며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시작. 그런 다음 요가의 ‘태양 경배 자세’가 이어진다. 차분히 진행되는 요가 동작으로 몸이 이완되면, 조금 더 열을 내기 시작한다. 손등 위에 동전을 올리고 공간을 걸어다닌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동전을 떨어뜨리는 ‘몸의 충돌’이 이어진다. ‘달팽이 달달달’ 게임, ‘감자’ 게임을 통해 승부의 본능을 깨우고 나면 워크숍에 참석한 생면부지의 10명 사이엔 금세 친밀도가 쌓인다. “몸을 풀며 친해지는 과정”(정종임 대표)이기도 하다.
타루에선 실제로 창작 전 ‘몸풀기 과정’을 거친다. 멤버들이 모여 태양 경배 인사로 하루의 작업을 시작한다. 늘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과정은 창작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다양한 경험을 소리에 접목하는 것이 타루의 자연스러운 창작 방식이다.
정종임 대표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창작을 하지만, 다양한 것들을 접하다 보면 굳이 이야기로 만들지 않아도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나온다”며 “소리꾼들은 오래도록 한 가지를 연마해 경지에 올라있는 사람들인데, 접한 적 없던 다양한 감각과 경험을 통해 더 뛰어난 창의력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즉흥과 놀이의 경험을 창작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몸풀기를 마치면 소리 수업에 돌입한다. 워크숍에선 타루의 경기민요 소리꾼 공미연의 ‘민요 수업’과 정보권의 판소리 특강이 이어졌다. 공미연이 타루와 함께 한 것은 민요를 통한 창작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판소리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민요는 일상과 정서를 담은 노래”라며 “민요를 가지고도 작창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타루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몸풀기로 승부욕을 끌어올리자, 소리는 절로 나왔다. 민요는 스스로 만들고 분석하는 재미가 있는 소리였다. 공미연은 “들리는 소리의 형태를 가사에 표시해 나만의 악보를 만들 수 있다”며 민요의 매력을 들려줬다. ‘심청가’ 중 한 대목을 골라 판소리 수업을 진행한 정보권은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는 1인 판소리의 묘미, 자유자재로 달라지는 시점을 통해 극의 재미를 보여줬다.
워크숍에선 오랜 시간 소리극의 세계를 다져온 타루의 동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발성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오랜 수련을 통해 체득한 일련의 창작 단계의 수행은 소리꾼의 개개인의 창의성을 끌어내면서도, 한 팀으로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전통의 세계에 있는 예술가들에게도 타루의 창작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전통연희를 하고 있는 김태정은 “창작은 표현인데, 나 스스로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워크숍에 오게 됐다. 목적도 없이 일단 시작하라는 말이 너무도 신선했다”며 “다른 장르를 하고 있지만, 고민하는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 끊임없이 대립하며 갈등 속에 살았는데, 고지식하고 닫힌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더 열린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어려운 옛말의 변주…소리꾼들의 고민
“이게 무슨 말이야. 뭐라고 하는 거예요?”
소리극에 따라 다니는 고질적인 질문이 있다. 기존 다섯 바탕을 비롯해 전통의 울타리 안에서 소재를 가져올 경우 잊혀진 고어(古語)와 사자성어는 ‘요즘 시대’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다. 타루의 창작 과정을 공유하며 ‘전통의 세계’에 다가서고자 한 예술가들에게서도 이런 의문이 나왔다. 고어가 아닌 지금의 정서에 맞는 ‘언어의 변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리꾼들 역시 반복하는 고민이다. 타루의 작업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2001년 창단한 타루는 기존 다섯 바탕을 뛰어넘어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재창조했다. 전통의 세계가 다져온 언어를 지키면서 새로운 전통을 더하는 작업이 타루를 통해 이어졌다.
정종임 대표는 “판소리는 그 시대의 언어로 잘 표현돼있다. 이것을 우리 시대의 말로 옮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굳이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시대의 언어로 창작하자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어린이 소리극 ‘말하는 원숭이’부터 국악 뮤지컬 ‘운현궁 로맨스’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변주가 이어지는 작업도 있다. 공미연은 “민요와 판소리 모두 그 시절에 유행했던 곡들”이라며 “그런 만큼 지금의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어려운 말을 현재의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바꿔 부르는 작업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루 소리꾼 심소라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판소리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할 것인가는 소리꾼들의 영원한 숙제”라고 전제하며, “다만 과연 우리가 이 말들을 다 알아들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 팝송, 샹송 등 다른 언어의 음악을 듣듯, ‘언어에 대한 집착’을 걷어내면 “조금 더 열린 감각으로 소리극을 감상할 수 있다”고 봤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기사 원문 : https://v.daum.net/v/20230526101710231
‘2023 남산소리극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타루의 소리극 창작 워크숍’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타루의 소리극 창작 워크숍
창작의 첫 걸음은 ‘몸풀기’
낯선 감각ㆍ경험을 창작으로 연결
판소리 진입장벽 높이는 옛말
전통의 말맛 살리되 때에 따라 변주
“일단 걸어볼까요?”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걸어보라는 말에 저마다의 영역에서 활동해온 예술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모두 다섯 단계가 있어요.”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속도를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 단계를 정해 전진하다, ‘멈추라’는 신호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서서 “정지된 자신의 몸을 스캔”한다. ‘움직임 수업’에서 정해진 약속이다.
이제 음악이 들려온다. BGM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음악을 거스르는 주인공은 어디에나 있다. 연출가 노심동은 자장가 같은 ‘트로이메라이’에 5단계의 속력으로 질주하며 참가자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음악에 지배 당하지 않는 창작자의 행동은 그것 자체로 ‘신선한 자극’이다. 노심동 연출가의 움직임에 다른 예술가들의 몸짓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심지어 주체적으로 달라졌다. 안주하지 말라는 듯, 음악은 금세 장르를 바꿔 블루스로 이어진다. 움직이는 상황에 취하기 직전, 수업은 방향을 전환한다. 타루 소리꾼들의 동화 낭독이 시작된다. “달님도 자장 자장.” 동화책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세계가 된다. 정종임 타루 대표는 “때론 텍스트를 들으며 즉흥적으로 창작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조금은 빨라진 장단에 작창이 더해지자 예술가들의 연기는 더 진해진다. 수심 한 줄 없는 말간 얼굴을 한 또 다른 예술가는 뻔뻔한 꿈나라 연기를 더했다.
‘2023 남산소리극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타루의 소리극 창작 워크숍’. 연기, 전통연희, 극작, 연출 등을 하고 있는 10명의 예술가들은 전통을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타루의 작품 제작 과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창작의 출발은 ‘몸풀기’…“다양한 감각의 경험으로 창의력 키우기”
타루의 창작방식은 독특하다. 출발은 몸풀기다. 몸 푸는 과정이 체계적이다. 계란 크기로 주먹을 쥐고 손날로 심장을 툭툭 치며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시작. 그런 다음 요가의 ‘태양 경배 자세’가 이어진다. 차분히 진행되는 요가 동작으로 몸이 이완되면, 조금 더 열을 내기 시작한다. 손등 위에 동전을 올리고 공간을 걸어다닌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동전을 떨어뜨리는 ‘몸의 충돌’이 이어진다. ‘달팽이 달달달’ 게임, ‘감자’ 게임을 통해 승부의 본능을 깨우고 나면 워크숍에 참석한 생면부지의 10명 사이엔 금세 친밀도가 쌓인다. “몸을 풀며 친해지는 과정”(정종임 대표)이기도 하다.
타루에선 실제로 창작 전 ‘몸풀기 과정’을 거친다. 멤버들이 모여 태양 경배 인사로 하루의 작업을 시작한다. 늘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과정은 창작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다양한 경험을 소리에 접목하는 것이 타루의 자연스러운 창작 방식이다.
정종임 대표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창작을 하지만, 다양한 것들을 접하다 보면 굳이 이야기로 만들지 않아도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나온다”며 “소리꾼들은 오래도록 한 가지를 연마해 경지에 올라있는 사람들인데, 접한 적 없던 다양한 감각과 경험을 통해 더 뛰어난 창의력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즉흥과 놀이의 경험을 창작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몸풀기를 마치면 소리 수업에 돌입한다. 워크숍에선 타루의 경기민요 소리꾼 공미연의 ‘민요 수업’과 정보권의 판소리 특강이 이어졌다. 공미연이 타루와 함께 한 것은 민요를 통한 창작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판소리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민요는 일상과 정서를 담은 노래”라며 “민요를 가지고도 작창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타루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몸풀기로 승부욕을 끌어올리자, 소리는 절로 나왔다. 민요는 스스로 만들고 분석하는 재미가 있는 소리였다. 공미연은 “들리는 소리의 형태를 가사에 표시해 나만의 악보를 만들 수 있다”며 민요의 매력을 들려줬다. ‘심청가’ 중 한 대목을 골라 판소리 수업을 진행한 정보권은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는 1인 판소리의 묘미, 자유자재로 달라지는 시점을 통해 극의 재미를 보여줬다.
워크숍에선 오랜 시간 소리극의 세계를 다져온 타루의 동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발성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오랜 수련을 통해 체득한 일련의 창작 단계의 수행은 소리꾼의 개개인의 창의성을 끌어내면서도, 한 팀으로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전통의 세계에 있는 예술가들에게도 타루의 창작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전통연희를 하고 있는 김태정은 “창작은 표현인데, 나 스스로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워크숍에 오게 됐다. 목적도 없이 일단 시작하라는 말이 너무도 신선했다”며 “다른 장르를 하고 있지만, 고민하는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 끊임없이 대립하며 갈등 속에 살았는데, 고지식하고 닫힌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더 열린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어려운 옛말의 변주…소리꾼들의 고민
“이게 무슨 말이야. 뭐라고 하는 거예요?”
소리극에 따라 다니는 고질적인 질문이 있다. 기존 다섯 바탕을 비롯해 전통의 울타리 안에서 소재를 가져올 경우 잊혀진 고어(古語)와 사자성어는 ‘요즘 시대’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다. 타루의 창작 과정을 공유하며 ‘전통의 세계’에 다가서고자 한 예술가들에게서도 이런 의문이 나왔다. 고어가 아닌 지금의 정서에 맞는 ‘언어의 변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리꾼들 역시 반복하는 고민이다. 타루의 작업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2001년 창단한 타루는 기존 다섯 바탕을 뛰어넘어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재창조했다. 전통의 세계가 다져온 언어를 지키면서 새로운 전통을 더하는 작업이 타루를 통해 이어졌다.
정종임 대표는 “판소리는 그 시대의 언어로 잘 표현돼있다. 이것을 우리 시대의 말로 옮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굳이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시대의 언어로 창작하자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어린이 소리극 ‘말하는 원숭이’부터 국악 뮤지컬 ‘운현궁 로맨스’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변주가 이어지는 작업도 있다. 공미연은 “민요와 판소리 모두 그 시절에 유행했던 곡들”이라며 “그런 만큼 지금의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어려운 말을 현재의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바꿔 부르는 작업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루 소리꾼 심소라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판소리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할 것인가는 소리꾼들의 영원한 숙제”라고 전제하며, “다만 과연 우리가 이 말들을 다 알아들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 팝송, 샹송 등 다른 언어의 음악을 듣듯, ‘언어에 대한 집착’을 걷어내면 “조금 더 열린 감각으로 소리극을 감상할 수 있다”고 봤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기사 원문 : https://v.daum.net/v/2023052610171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