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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포스트코리아 공연 비평] 그 여자의 원한이 하늘에 닿을 때: 창작하는 타루 〈두아: 유월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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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하는 타루의 〈두아: 유월의 눈〉이 지난 3월 12일부터 22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되었다. 〈서천꽃밭 이야기〉에 이은 국립정동극장의 ‘창작ing’ 올해 두 번째 작품이다. 타루는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신작으로 처음 선보인 뒤 2년 만에 재연을 올리게 되었다. 이번 공연은 초연이 오미크론 확산에 의해 연기⸳축소 공연되며 단 하루만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던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던 뜻 깊은 무대이기도 했다.

작품은 원나라 작가 관한경의 잡극 〈두아원(竇娥寃)〉이 원작으로, 원작 제목을 직역하면 ‘두아의 원한’이라는 뜻이다. 소리극에서 부제로 붙인 ‘유월의 눈’은 1838년 영역본으로 서양에 알려질 때 ‘Snow in midsummer(오뉴월에 내리는 눈)’으로 번역된 데에서 기인한다. 이 영역본 제목은 1919년 상하이에서 왕용춘의 연출로 공연될 때 ‘유월설참두아(六月雪斬竇娥)’라는 제목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2003년 TV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매우 인기 있는 작품이다. 


내 억울한 죽음에 유월 하늘이 눈을 내리리라

줄거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성이 혼령이 되어 관에 호소해 원한을 푸는 이야기로, 이렇듯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원이나 한을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이 풀어주는 구조의 신원설화(伸寃說話)는 고전소설 『장화홍련전』 등으로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구조다. 제목의 ‘두아’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게 된 두아는 아버지 두천장의 슬하에서 자라다가, 일곱 살 때 수도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아버지를 떠나 이웃집 채노파에게 맡겨진다. 두아의 원래 이름은 단운, 아버지는 과거에 합격하면 딸을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며 단운에게 두씨의 예쁜 딸이라는 뜻으로 ‘두아(竇娥)’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준다.

두아는 채노파의 아들 채낭과 혼인을 하지만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두아는 시어머니 채노파와 서로 의지하며 살림을 꾸려간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 없이 지내는 과부 고부의 삶이란 고단하고도 위험한 법, 고리대금업자인 채노파는 돌팔이 의원 새노의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러 갔다가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고, 마침 지나는 길이던 장려아 부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가하게 된다.

그러나 고부가 맞닥뜨리게 된 진짜 위험은 장려아 부자였다. 홀아비에 노총각이었던 장려아 부자는 두아와 채노파가 과부임을 알게 되자 은혜를 갚으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을 남편으로 맞으라고 협박한다. 아내를 얻고자 좀 더 몸이 달아 있는 것은 아들인 장려아인데, 그는 채노파를 살해하고 두아를 손에 넣으려는 계략을 꾸민다. 날건달인 그에게 애초에 타인의 목숨을 구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어울리지 않았음이다. 그러나 채노파에게 먹이려던 독이 든 양곰탕을 먹고 죽음을 맞은 것은 장려아의 아버지다.

장려아는 두아를 범인으로 허위 고발을 하고 두아는 누명을 쓴 채 형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죽기 전 두아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면 자신이 죽고 나서 피가 하늘로 솟구치고 유월에 눈이 내리며 3년간 가뭄이 들리라는 일성을 남긴다. 3년 뒤 감찰어사가 되어 부임한 두천장 앞에 두아의 혼령이 나타나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원한을 씻어달라고 호소하고, 두천장은 새노의와 장려아는 물론 장려아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태수 도올까지 벌을 내림으로써 두아의 원을 풀어준다.

우리나라에서 구비문학으로 전해지는 『장화홍련전』이나 『심청전』, 서사 무가 『바리데기』 등에서 딸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를 면책해주고 있는 것과 달리 딸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딸을 원을 풀어주는, 결자해지 성격의 결말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 점이다.


이 이야기가 다시 될 땐 다른 결말이 오길

각색을 맡은 김한솔 작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음을 맞기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주인공 두아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데 주력했다. 각각 남편과 아들을 잃고 서로를 각별히 의지하게 된 채노파와 두아의 관계가 특히 인상적으로 그려진 이유다.

 송보라는 구성지고 맛깔스러운 노래는 물론 나이 들어 걸음이 불편해진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한쪽 팔을 지팡이로 사용하는 신체 연기로 채노파를 입체적으로 살려냈고, 김가을은 일곱 살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두아가 성장해가는 동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순진한 어린아이부터 시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까지 다양한 모습을 맑고 힘 있는 목소리로 표현했다.

원작에서 수도까지 가는 먼 길에 방해가 되는 어린 딸을 이웃집에 민며느리로 주어버리고 출세를 위해 떠나는 두천장에게도 각색을 통해 딸을 그리워하며 애타게 찾는 새로운 서사가 주어졌다. 두천장은 딸이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물어물어 두아의 뒤를 쫓고, 마침내 혼령이 되어 만나게 된 딸의 억울함만이라도 풀기 위해 태수의 비리와 관계자들의 숨겨진 죄를 밝혀낸다. 두천장 역을 맡은 정보권의 소리는 객석에 애절한 울림을 전달하면서도 중간 중간 가사를 더듬으며 감정을 끊기게 해 아쉬움을 남겼다.

공연은 소품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배우들의 노래와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데, 두아가 죽고 나서 유월 하늘에 눈발이 날리는 장면 역시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들이 눈가루를 부채질해 날리며 신체 움직임의 연장선상으로 연출했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배우들이 두아를 둘러싸고 눈가루를 뿌려줌으로써 김한솔 작가가 각색에서 의도했던 바와 같이 두아를 홀로 두지 않는 연대의 움직임을 시각화한 것이 되었다.

작품은 유랑연희단원들이 펼치는 극중극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공연은 단장이 무대로 나와 극의 시작을 알리면 배우들이 극중에서 부르게 될 각자의 노래를 맛보기로 들려주며 기대감을 높인다. 두천장이 죄인들을 단죄하며 극이 마무리되고 난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공연의 마침표를 찍는다. 연희단원들을 통솔하는 단장 서어진은 곧 배우로 분해 극 안에서 장려아를 연기하고, 채낭과 새노의 외에 여러 역할을 맡아 멀티 배우로 활약하는 이재현이나 장려아의 아버지와 태수 도올 등을 번갈아 연기하며 감초 역할을 해내는 이나라는 퇴장 시에 각각 단역배우와 조연배우의 설움을 넉살 좋게 노래하며 관객들이 지금 보고 있는 공연이 연희극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배우들의 마지막 노래가 ‘이 이야기가 다시 될 땐 다른 결말이 오길’이라는 것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본디 구비문학이란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이기에 상이한 판본이 동시에 존재하는 법이다. 이 이야기는 설화에서 출발한 구비문학이 아니라 원작자가 따로 있어 판본이 달라질 일은 없지만 유랑연희단의 노래로 객석에 전달한다는 형식 안에서 무수히 각색을 거치며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억울하게 죽은 두아의 이야기가 노래로 다시 불리게 될 때 두아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마도 타루의 다음 무대를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리뷰 원문 : https://dancepostkorea.com/new/board/review/pfm_view.php?search_part=b_title&search_pfm=&page=1&b_idx=551